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수백, 수천억 원에 달하는 이적료에 놀라거나, 계약이 만료된 선수가 자유롭게 다른 팀으로 옮기는 '자유계약' 소식을 접했을 것입니다. 현재 프로축구 시스템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 이야기들이,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아시나요? 오늘은 프로축구의 탄생부터 선수들의 권리를 찾아온 역사적인 사건, 바로 '보스만 판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1. 프로축구의 탄생: 재미와 돈이 만든 변화
19세기 영국, 산업혁명으로 먹고 살 만해진 사람들이 여가 시간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축구는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처음에는 동네마다 규칙이 다른 아마추어 경기였죠. 위험한 플레이 때문에 다치는 선수들이 많아지자, 젠틀맨들이 모여 규칙을 통일하고 축구협회(FA)를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어소시에이션 풋볼'의 시작입니다.
초창기 축구는 순수한 아마추어 정신을 추구했습니다. 선수들은 돈을 받지 않고 경기에 참여했고, 대회 참가비를 내거나 우승해도 트로피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영국 북서부 지역(맨체스터, 리버풀 등)의 공장 노동자들이 축구를 하면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들은 다치면 일을 할 수 없었기에 안전한 규칙을 원했고, 동시에 기업가들은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이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선수들에게 은밀하게 보수를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받는 선수, 즉 프로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경기의 수준은 높아졌고 관중도 늘었습니다. 티켓 판매로 수익을 얻게 된 구단들은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경쟁했고, 이는 곧 선수들의 몸값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런던 중심의 아마추어 협회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결국 자본의 힘에 밀려 선수들에게 돈을 주는 것, 즉 '프로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로화가 인정되면서 선수들의 임금이 빠르게 오르자 구단들은 재정적 부담을 느꼈습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주급 상한선(샐러리캡)을 도입하고, 선수들의 이적을 제한하는 강력한 제도를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선 보유 후 이적(Retain and Transfer)' 제도입니다.
2. 선수들의 발목을 잡았던 '선 보유 후 이적' 제도
선 보유 후 이적 제도는 선수에게 극히 불리한 제도였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난 선수라 할지라도, 원 소속 구단은 해당 선수의 '등록권'을 계속 보유했습니다.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려면 반드시 원 소속 구단의 동의가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구단은 이적료를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불합리했던 것은, 원 소속 구단이 '합당한' 재계약 조건을 제시하면 선수는 이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다는 점입니다. '합당한 조건'의 판단은 축구협회가 내렸기에, 사실상 구단과 협회가 선수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좌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선수가 이에 불복하고 계약 연장을 거부하면, 해당 리그에서는 더 이상 뛸 수 없게 되어 하위 리그나 다른 나라 리그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 제도는 1893년에 도입되어 무려 100년 가까이 이어집니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선수 노조를 만들기도 했지만, 거대한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계약 만료 후에도 자유롭게 팀을 옮기지 못하고 원 소속팀에 묶이거나, 이적료 때문에 갈 팀을 찾지 못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마치 구단이 선수의 '소유권'을 가진 듯한,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노예 제도'와 다를 바 없는 불합리한 관행이었습니다.
3. 용기 있는 한 사람, 보스만
이 불합리한 시스템에 균열을 낸 것은 벨기에의 평범한 축구선수, 장마르크 보스만(Jean-Marc Bosman)이었습니다. 1990년, 벨기에 1부 리그 RFC 리에주 소속이었던 보스만은 계약 만료 후 프랑스 2부 리그 덩케르크와 이적에 합의합니다. 하지만 리에주 구단은 보스만에게 과도한 이적료 500만 벨기에 프랑(약 1억 7천만 원)을 요구했고, 덩케르크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이적은 무산됩니다.
이적 시장이 닫히자 리에주는 보스만에게 이전 연봉의 25% 수준으로 삭감된 조건의 재계약을 제시하며 받아들이지 않으면 뛸 수 없다고 통보합니다. 갈 곳이 없었던 보스만은 팀 훈련에서 제외되고 제대로 된 수입 없이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주변 팀들도 보스만에게 접근하기를 꺼렸는데, '제도를 무시하고 이적하려 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괘씸죄'처럼 따돌림을 당한 것입니다.
결국 보스만은 벨기에 축구협회와 UEFA, 그리고 자신의 소속팀 리에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그의 주장은 간단했습니다. '계약이 끝났는데 왜 자유롭게 이적할 수 없는가? 이것은 유럽연합(EU)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직업 선택 및 이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제도다.' 보스만의 변호를 맡은 젊은 변호사, 장루이 뒤퐁(Jean-Louis Dupont)은 EU 헌법의 상위성을 근거로 보스만 제도의 위헌성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4. 보스만 판결과 축구계의 대격변
보스만의 소송은 벨기에 법원을 거쳐 유럽 사법재판소까지 올라갔습니다. 유럽 사법재판소는 축구계의 거대한 관행 앞에서 신중한 검토를 거쳤고, 마침내 1995년 12월 15일, 역사적인 판결을 내립니다.
보스만 판결의 핵심 내용
- 계약 만료 선수의 자유 이적 허용: EU 회원국 선수들은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이적료 없이 자유롭게 다른 EU 회원국 리그의 팀으로 이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EU 선수에 대한 외국인 선수 제한 철폐: EU 회원국 선수들이 다른 EU 회원국 리그에서 뛸 때, 내국인 선수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외국인 선수 출전 쿼터(제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100년 가까이 이어진 '선 보유 후 이적' 제도의 근간을 뒤흔들었습니다. 축구계는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구단들은 계약 만료 선수들을 붙잡아 둘 수 없게 되었고, 선수들은 자유로운 이적을 통해 몸값을 크게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외국인 선수 제한이 사라지면서 뛰어난 선수들이 빅리그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곧 리그의 수준 향상과 세계화로 이어졌습니다.
판결 직후, 많은 선수들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을 미루거나 거부하며 자유계약 신분이 되어 팀을 옮겼습니다. 이적료 수입이 줄어든 구단들은 선수들을 계약 만료 전에 팔거나, 높은 연봉을 주고 재계약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선수들의 몸값과 연봉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현재 보는 수천억 원대 이적료와 수백억 원대 연봉은 보스만 판결 이후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보스만 판결 이후의 변화와 보스만의 쓸쓸한 말년
보스만 판결 이후 FIFA는 새로운 이적 규정을 정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논의와 EU의 자문을 거쳐 2001년에 최종 규정이 마련됩니다. 이 규정에는 선수 보호 기간(만 28세 미만 선수는 3년, 만 28세 이상은 2년) 동안은 구단이 선수 등록권을 보유하지만, 그 이후에는 잔여 연봉의 일부를 보상금으로 지급하면 선수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이적할 수 있는 조항(이른바 '웹스터 룰', 2004년 웹스터 선수의 실제 사례를 통해 유명해짐)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는 보스만 판결의 정신을 이어받아 선수들의 권리를 일정 부분 보장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보스만 판결은 선수들의 권익 향상과 축구 시장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정작 보스만 자신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소송에서 승리하여 보상금을 받았지만, 변호사 수임료와 생활고 등으로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복잡한 소송 과정과 축구계의 따돌림 속에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알코올 중독과 폭행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자신 때문에 큰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 일부 구단들은 그가 자선 경기를 통해 도움을 받으려는 시도마저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선수들이 보스만 판결 덕분에 자유와 부를 얻었지만, 정작 그 판결을 이끌어낸 보스만은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어쩌면 불합리한 시스템에 홀로 맞섰던 '축구계의 독립투사'였던 그는,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데 기여했지만 그 변화의 과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쓸쓸한 영웅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프로축구의 화려함 뒤에는 이처럼 선수들의 희생과 용기, 그리고 불합리에 맞선 투쟁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보스만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축구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선수들의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합니다.